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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자 KAIST STP 초빙교수님] '그랑 파리 프로젝트'와 '그랜드 서울 프로젝트'(중앙일보, 04.04)
Writer 관리자 Created 2015.07.10 Views 936

[중앙시평] '그랑 파리 프로젝트'와 '그랜드 서울 프로젝트'

[중앙일보] 입력 2015.04.04 00:05

 

봄기운이 반가워 오래간만에 남산을 걸었다. 벚꽃까지 피면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그러고 보니 70회 식목일을 맞고 있다. 양력 4월 5일은 조선시대 성종대왕이 동대문 밖 선농단(先農壇)에서 적전(籍田)을 친경(親耕)한 날이라 한다. 기후변화 탓에 언젠가 식목일 날짜가 앞당겨질지도 모르겠다.

 최근 파리 녹화계획이 돋보인다. 분산된 자투리땅을 녹화사업과 연계해 생물종 다양성을 살려내는 그랑 파리(Le Grand Paris) 프로젝트다. 2013년 바지선 위의 수상 가든 5개소 조성, 소공원 93개소, 외곽의 폐기된 철로 녹화, 쓰레기장 꽃밭 만들기에 10만 그루 나무 밑에 꽃 심기 등 콘텐트가 다채롭다. 대형 쇼핑몰 옥상의 채소농원 조성은 빗물 재활용에다가 도심 기온까지 낮추고 있다. 2003년 8월 최악의 폭염으로 파리 시민은 열흘 동안 하루 350명씩 사망했다. 특히 녹지가 없는 지역의 피해가 컸다.

 그랑 파리 프로젝트의 핵심은 콘크리트·철근·유리로 구축된 광물성 환경(mineral environment)의 녹색화로 녹지를 100배 늘려 세계 최고의 자연친화형 도시로 탈바꿈한다는 것이다. 풀뿌리 시민운동과 정책사업을 엮어낸 것도 자랑이다. 이미 생물 개체군과 센강의 어종이 살아나고 있다. 뉴욕시의 센트럴파크는 지난 10년간 30여 종 12만 그루의 가로수를 심었다. 앞으로 2030년까지 100만 그루를 심어 도로변 공간 100%를 나무로 채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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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숲의 기능은 대기·토양 오염 정화, 수원(水源) 함양, 경관, 휴양 등 삶의 질 향상의 최고 수단이다. 나무는 대기 중의 질소산화물, 황산화물을 비롯해 미세먼지를 제거해준다. 잔디와 토양 미생물도 오염 청소에 큰 몫을 한다. 도시숲은 여름 한낮의 평균기온을 낮추고(3~7도), 습도를 높여준다(9~23%). 버즘나무(플라타너스)는 하루 평균 5시간 15평형 에어컨 5대 가동에 버금가는 효과를 낸다.

 녹색은 우리 눈에 가장 편안하고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색깔이다. 15분간 녹색 숲을 바라보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농도가 떨어지고 혈압이 낮아진다. 도시숲과 도로변의 큰 나무는 소음을 제거한다. 느티나무 한 그루는 연간 이산화탄소 2.5t을 흡수하고, 산소 1.8t을 내뿜는다. 이 때문에 기후변화 협상에서 숲은 당당히 탄소 흡수원으로 인정받았다.

 최근에는 대도시와 전원 생태계를 공존시키는 개발 모델이 각광을 받고 있다. 자연적 정화 기능을 살리는 것이 웰빙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대도시일수록 생활권 도시숲의 조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전체 도시숲 가운데 생활권 도시숲 비율이 매우 낮다(3.4%). 남산과 북한산 등을 제외하면 서울(4㎡)의 1인당 생활권 도시숲은 뉴욕(23㎡)이나 런던(27㎡)에 견줄 바가 못된다(산림청).

 광물질로 덮여 물이 침투되지 않는 땅의 면적을 조사한 결과 서울시는 불투수(不透水) 면적률이 54%였다(2012년 환경부). 이 수치가 25%를 넘으면 빨간불이다. 도심을 달구는 열섬 효과(heat island)를 비롯해 침수, 지하수 고갈, 수질오염 등 물 순환 구조가 악화된다는 뜻이다.

 얼마 전 광화문 광장 양 옆의 5차로를 절반으로 줄여 광장을 넓히는 계획이 추진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광장이 확장되면 교통량이 분산되고 산책을 많이 한다면서. 상식적으로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다. 진정 서울 시민의 웰빙과 도시의 품격을 염두에 둔다면 도심의 콘크리트는 최대한 걷어내고 쌈지숲을 조성하는 게 정답이다. 외국이나 국내나 도시숲 등 자연경관의 조성은 주변 아파트 시세의 급상승으로 이어진다.

 때마침 그랜드 서울 프로젝트의 기회가 열리고 있다. 1980년대 한강종합개발계획 이래 최초로 ‘한강 및 주변 지역 관광자원화’ 사업에 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파리의 센강 같은 관광명소를 만들고, 한강숲 조성, 문화시설 확충 등 마스터플랜이 올해 상반기까지 나온다고 한다. 그보다 더 기대를 모으는 것이 ‘용산공원 조성 종합기본계획’이다. 서울 도심에 랜드마크형 국립생태공원이 조성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미군 부대 이전과 용산공원 조성의 재원을 조달해야 하는 처지이긴 하나 이번 기회는 반드시 그랜드 서울로 승격시키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녹지 조성사업은 산림청·환경부·국토교통부·기획재정부·지방자치단체 등 관련 주체가 분산돼 쌈지숲 가꾸기부터 광역 생태 네트워크까지 다양한 형태로 추진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통합계획과 사후관리가 철저히 이루어질 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특히 2027년까지 추진될 용산공원 프로젝트는 기필코 남산-용산공원-한강변의 단절된 녹지축을 연결해 생태계를 복원하고 도시인의 심신을 순화시키는 공간으로 재창조해야 한다. 그 값어치는 결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찬란한 유산(遺産)으로 대대손손 전승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사)그린코리아21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