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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대덕포럼] 그냥 과학자가 아니라 어떤 과학자(대전일보, 2016.01.26)
Writer 관리자 Created 2016.01.26 Views 666

 

 

[대덕포럼] 그냥 과학자가 아니라 어떤 과학자

 

김소영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사회·경제적 관념 매몰된 교육 목적만 있을뿐 흥미·관심 없어 꿈을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해야

 

애들 셋 모두 대덕연구단지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닌 학부모이자 우리나라의 대표적 이공계 중심대학인 카이스트에서 과학기술정책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소위 '미래세대'라는 초등학생들에게 과학자, 공학자라는 꿈이 얼마나 존재하는지 늘 궁금했다.

몇년전 학부생들과 대덕연구단지의 과학문화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대덕연구단지 초등학교와 대전 원도심 지역 초등학교에서 설문을 돌린 적이 있다. 과학과 관련된 지식, 태도, 활동에 관한 여러 설문 문항에서 두 학교의 차이는 너무나 뚜렷해서 사회과학자로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통계 결과를 얻었다 싶을 정도였다.

그 중 장래 꿈을 묻는 개방형 질문이 있었는데 과학자라고 답한 경우를 따로 집계하도록 했더니 놀랍게도 원도심 초등학교에서는 과학자가 꿈인 어린이들이 간간이 있었는데 연구단지 초등학교에서는 한 명도 없었다. 과학 지식에 관한 설문에서는 월등히 점수가 높게 나타난 연구단지 초등학생들이 이게 웬말인가. 입시 교육의 폐해로, 아는 건 많은데 정나미가 떨어져버린 것인가.

실제로 언론에 곧잘 보도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피사·PISA)에서 한국은 OECD 국가 중 수학-과학 성취도는 최상위권인데 흥미도-관심도는 최하위를 기록한다. 피사 테스트는 2000년 도입 이래 2012년까지 3년 간격으로 OECD 국가를 포함한 약 60여개 국가에서 총 5차례 실시되었다. 가장 최근 실시한 2015년 결과는 올해 말 발표 예정이나 비슷한 결과가 예상된다.

장래 꿈에 대한 개방형 질문에 대한 연구단지 초등학생 응답자 대답을 일일이 다 확인해보았더니 꽤나 재미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개방형 질문에서 '과학자'로 쓴 응답을 코딩하라고 하니 학부생은 말그대로 '과학자'만 코딩을 했는데, 연구단지 초등학생들은 '그냥' 과학자가 아니고 친환경소재과학자, 로봇공학자, 유기화학자, 한의학연구원 등 '어떤' 과학자로 적어낸 것이었다. 심지어 항공우주연구원장으로 답한 학생도 있어 같이 검토하던 학부생이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그냥 과학자가 꿈인 학생과 어떤 과학자가 꿈인 학생 중 누가 그 꿈이 더 절실하고 더 그 꿈에 가까이 갈지는 명약관화하다. 요즘 연구개발특구 난립으로 홀대를 받는다는 원조(?) 특구 대덕연구단지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세계 최초, 세계 최고 수식어를 단 연구개발 성과만은 아닐 것이다. 추상적인 단어와 이미지에 숨은 과학기술, 과학자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 무슨 기술을 궁리하는지가 초등학생의 꿈에 그대로 나타날 수 있는 과학문화 공동체를 일구어내는 것이야말로 연구개발특구 맏형(?)만이 자랑할 수 있는 자산이 아닐까? 왜냐하면 잘나가는 연구자나 잘팔리는 연구는 다른 데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만 과학이 스며든 일상은 오랜 시간 그렇게 살아야만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덕연구단지 주민이자 사실 대전 시민으로서 아쉬운 점이 있다. 왜 누구에게는 어떤 과학자인데 누구에게는 그냥 과학자인가. 원도심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 중에 과학자는 가뭄에 콩나듯하였다. 장래 희망을 PC방 주인이라고 쓴 응답을 보는 순간, '어떤' 과학자를 상상하는 것이 결국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지하다시피 연구단지 주민들의 평균 학력은 전국 최고이고 소득 수준 역시 매우 높다. '어떤' 과학자를 꿈꿀 수 있는 것은 그나마 그런 여건이 되었기 때문일 테다.

사회과학자로서 이 두 지역 초등학생들의 꿈이 왜 이렇게 다른가에 대해서는 상식적인 수준을 넘어 꼼꼼이 분석해야봐야겠지만, 한 가지 바램은 통계적으로 사회경제적 환경이라는 변수를 감안한다고 해도 연구단지의 과학문화 공동체적 특성이 여전히 유의미했으면 하는 것이다. 특히나 지금처럼 사회적 계층 이동성이 극단적으로 줄고 전통적으로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해온 교육이 오히려 사회경제적 지위 세습을 공고화하는 상황에서 과학문화가 잘나가는 계층, 잘나가는 지역에만 작동한다면 '어떤' 과학자라는 꿈은 오직 1%에게만 허용되는 사치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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