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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대덕포럼] 착한 일은 왜 해야 하나(대전일보, 2016.03.01)
Writer 관리자 Created 2016.03.01 Views 856

 

[대덕포럼] 착한 일은 왜 해야 하나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해외원조 명목 경제이익 매몰 현지 적응보단 보여주기 봉사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 중요

커피를 좋아하면 익히 들어보았을 케냐AA 커피는 이름 그대로 동아프리카 맹주국 케냐에서 생산된다. 케냐의 커피산업은 국가적 차원의 품질관리과 기술개발, 생산유통시스템으로 케냐만큼 커피를 잘 기르는 나라도 없다는 평을 받는다. 그런데 케냐는 커피의 나라가 아니다. 최근 케냐에 카이스트와 같은 고급과학기술대학 설립의 타당성을 조사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가 알게 된 것이다. 수 차례 방문하여 그쪽 관계부처 공무원들과 만났는데 회의 때마다 대접하는 음료가 따뜻한 우유를 곁들인 차였다. 실제로 케냐에서는 연간 약 40만 톤의 차가 생산되는데 커피 생산량은 십분의 일에 불과하다.

다른 분야 개발원조사업(ODA)도 마찬가지이지만 과학기술분야 ODA역시 그 나라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케냐가 차의 나라이고, 영국식민지였던 탓에 영어교육 수준이 무척 높고, 역사적으로 인접국들보다 더 민주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해왔다는 점 등 참고해야 할 현지 정보는 참 많았다.

그런데 이 사업을 진행하면서 정작 난감했던 점은 해외원조사업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었다.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거의 유일한 나라로서 한국의 발전 경험은 개도국에 시사하는 바는 많다. 그럼 배우고 싶은 나라가 배워가면 되지 왜 우리가 나서서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줘야 하나. 원조 자금은 우리 국민들이 낸 세금인데 노숙자, 독거노인, 고아, 장애인 등 주위에 돌볼 사람들도 못 챙기면서 왜 바깥에 나가느냐는 것이다. 마치 옆집 아줌마도 선교하지 못하면서 왜 돈들여 해외선교를 가느냐는 비판처럼. 이런 비판은 원조를 오랫동안 해온 선진국에서 일찍부터 제기되었다. 따라서 나름 대응 논리가 개발되어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해외원조 역시 이기적인 사업이라는 것이다. 중국이 대대적인 아프리카 원조를 통해 시장 선점과 자원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처럼 해외원조의 경제적 가치가 막대하다는 것이다. 케냐 카이스트 타당성조사 사업도 공여 차관의 절반 이상이 한국 건설회사 참여, 한국산 실험기자재 구입, 파견 교수진 급여 등으로 다시 되돌아오게 디자인 되어 있다.

그렇지만 어딘가 찜찜하긴 하다. 마치 봉사활동 점수를 얻기 위해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굳이 도와달라고 하지도 않는데도 돕겠다고 나서는 꼴이다. 더 심하게 표현하면 못사는 나라에 원조를 핑계로 벼룩의 간을 빼먹는 것이다. 김소영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

몇 년째 카이스트에서 '국경없는 공학자(Engineers without Borders, EWB)' 활동을 이끄는 기계공학과 교수님은 활동 대상지로 네팔을 고른 이유에 대해 그 나라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원하니 반대급부로 이런저런 좋은 것이 생기는 나라가 아니라, 지원해봤자 돌아오는 게 없어서 '그냥' 도울 수밖에 없는 나라다. 활동 자금은 학생들이 스스로 모으고, 현지 활동 역시 학생들이 항공비와 체류비를 자비로 부담하며 다녀온다. 항공비를 절약하기 위해 몇 번씩 갈아타서 가고 활동지도 수도 카트만두에서 한참 떨어진 산골이라 도착하는 데만 이틀 걸린다. 카트만두에 가면 각국에서 온 해외학생봉사단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대부분 학교에서 조직적으로 지원해서 온 경우인데, 직항편으로 와 카트만두에만 있다 직항편으로 돌아간다. 또 자원봉사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 몰려다니며 식사도 현지식이 별로라며 고급 식당에서 먹는다.

'정의란 무엇인가' 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의 또 다른 베스트셀러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는 이스라엘 유치원 얘기가 나온다. 엄마들이 자꾸 시간을 넘겨 아이들을 데리러 오니까 원장이 늦는 시간에 비례해 벌금을 물리기로 했다. 그랬더니 늦게 데리러 오는 비율이 오히려 더 늘었다. 벌금을 물리기 전에는 엄마들이 자기 때문에 퇴근 시간을 넘긴 선생님에게 미안해하며 불가피하지 않으면 제 시간에 데리러 왔다. 벌금을 물리자 엄마들이 돈만 내면 늦게 데려가도 되는 것으로 알고 오히려 더 늦게 데리러 오더라는 것이다.

착한 일을 왜 해야 하나? 착한 일은 그냥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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