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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대덕포럼] 노벨상은 누구의 것인가(대전일보, 2016.06.14)
Writer 관리자 Created 2016.06.14 Views 735

 

[대덕포럼] 노벨상은 누구의 것인가

 

 

김소영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학과장

 

대규모 연구집단·예산 등 투입 수많은 참여자중 소수만 조명 말단 연구자 키워야 더 큰 성과

당연한 얘기지만 노벨상은 아무나 타는 게 아니다. 2015년 유네스코 추산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실제 논문을 출판하는 과학자는 약 7.8백만명이다. 과학분야 노벨상은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세 분야에서 각각 세 명까지 수상하므로, 전세계 과학자 중 상위 1%를 분모로 잡고 기계적으로 계산해도 노벨상 수상 평균 확률은 이들 최상위 과학자들한테도 1.1%에 불과하다.

1983년 생리의학상을 여성 최초로 단독 수상한 바버라 매클린톡은 옥수수 유전학자로 당시 유전학 수준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유전자의 자리바꿈(genetic transposition) 현상을 이론화하여 수십년간 학계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매클린톡은 동료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를 냉대하는 것에 크게 실망하여 학술 논문 발표를 중단하고 계약직 연구원으로 혼자 연구를 진행했다. 결국 매클린톡의 이론이 인정을 받으면서 말년에 하버드 명예박사학위에 노벨상까지 수상하기에 이른다. 노벨상 수상자에게는 한 두 개쯤 따라붙는 일화가 있기 마련인데 매클린톡의 경우 대학교 때 시험을 보다가 너무 집중한 나머지 답안지를 낼 때 자기 이름을 까먹어 그냥 내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노벨상을 수상하였을 때 노벨상보다 옥수수가 더 고마왔다고 하면서 자기처럼 연구를 하면서 너무나 행복했던 과학자에게 노벨상까지 주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한 소감도 회자된다.

이처럼 훌륭한 연구자가 받는 노벨상은 무엇보다 그 연구자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매클린톡과 같은 사례는 점점 찾아보기가 힘들다. 무엇보다 더 이상 연구자들이 '혼자' 연구하는 것이 아니고, 상당한 규모의 연구 집단과 연구비를 바탕으로 연구를 하기 때문이다.

2013년 노벨물리학상을 안겨준 힉스입자의 발견은 거대과학의 대표명사라 할 만한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의 대형강입자가속기(LHC)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LHC 건설 및 운영 예산은 약 10조 3000억으로 추정되며 100여 개국 1만 명 이상의 과학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생명과학 분야의 대표적 거대과학 연구인 인간게놈프로젝트는 13년에 걸쳐 약 5.5조원이 소요되었다. 그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이 경쟁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뇌연구에서는 2012년 시작된 유럽의 '인간 뇌프로젝트'가 2023년까지 약 1.9조원을 투자할 예정이고, 미국의 '브레인이니셔티브'는 2013-2015년간 약 3500억 원을 투입하였다.

이같이 엄청난 돈을 들여서 나오는 노벨상이라면 그것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집단의 것일테다. 문제는 이처럼 거대한 연구의 진행에는 필연적으로 연구의 큰 그림과 상관없이 마치 공장의 부속품처럼 자기가 맡은 부분만 수행하는 수많은 말단 연구자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대학의 경우 이공계 실험실은 대체로 학부생-석사과정생-박사과정생-포닥-교수로 이어지는 피라미드 구조로 운영되는데 여기서 말단 연구자들은 연구 계획이나 구상에 거의 참여하지 않고 위에서 시키대로 실험을 수행한다. 이렇게 해서 나온 연구 성과가 노벨상을 받는다면 집단으로서는 명예롭겠지만 막상 그 연구 집단 조직의 맨 밑에서 무슨 연구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참여한 말단 연구자들은 연구의 기쁨과 보람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인가.

2001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나고야대 노요리 료지 교수는 작년 방한했을 때 한국에서 노벨상이 나온다면 서울대나 카이스트, 포스텍이 아닌 제3의 대학에서 나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부 연구비를 가장 많이 받는 이들 대학에서 오히려 노벨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보다 기초과학이 소수의 뛰어난 아이디어가 아니라 수많은 연구자들이 백가쟁명식으로 천만송이 아이디어의 꽃을 피우는 가운데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 아이디어의 꽃은 말단 연구자일 때부터 키워나가는 것이다. 한마디로 노벨상을 탈 수 있는 상위 1%의 과학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그 분모를 늘려야 한다. 그럴 때 노벨상은 다시 연구자의 것이 될 것이다.
 

 

2016.06.14.

김정원 기자(jwkim@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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