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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치형][미래 오디세이]2030년, 자율주행차가 달려도 괜찮을까 (경향신문, 2018.3.28)
Writer 관리자 Created 2018.03.29 Views 823

 

[미래 오디세이]2030년, 자율주행차가 달려도 괜찮을까

 

 

전치형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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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에는 자기 집의 주차장에서 골목길을 거쳐서 일반도로로, 고속도로로, 목적지 주차장까지 모든 지역에 대해서 다 완전 자율주행차 상용화가 가능하도록 발전시켜 나가겠습니다.” 2월2일 고속도로에서 자율주행차 시승 행사를 마친 문재인 대통령의 말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세계 정상 가운데 고속도로에서 자율차를 탑승한 것은 제가 처음”이라며 자율주행차에 대한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정부가 선정한 ‘4차 산업혁명’ 선도사업인 자율주행차 발전을 위해 “국가가 모든 노력을 다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됐다”고도 했다. 자율주행을 통해 ‘교통사고 제로시대’가 올 거라는 대담한 전망도 내놓았다.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3월18일 발생한 사고 소식은 자율주행차의 미래를 아직 낙관할 수 없게 만든다. 맑은 날 밤 10시쯤 시속 60㎞ 정도로 달리던 우버의 자율주행 시험차량이 자전거를 끌고 도로를 건너던 보행자를 ‘발견’하지 못한 채 충돌하고 말았다. 이는 보행자가 자율주행차에 치여 사망한 첫 번째 사고로 기록되었다. 

 

이 사고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자율주행차의 미래 혹은 미래의 교통체계에 대한 우리의 선택이 달라진다. 가장 직접적인 반응은 자율주행 ‘기술’이 아직 불완전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자율주행차에 탑재된 라이다(LIDAR) 장치가 어두운 곳에서도 보행자를 쉽게 인식할 수 있는데도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사람처럼 지치거나 한눈팔지 않고, 항상 부지런하고 정확하게 전후좌우를 살핀다는 자율주행차 센서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고 조사 결과를 기다려보아야 할 사안이다. 


두 번째 반응은 우버의 자율주행 시험차량 운전석에 타고 있던 ‘안전 운전자’의 잘못을 따지는 것이다. 지역 경찰이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사고 당시 이 운전자는 전방을 주시하지 않았고 빠르게 운전대를 잡을 수 있도록 준비하지 않았다. 오작동이나 긴급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안전 운전자’의 역할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자율주행차 시험운행을 담당하는 사람의 자격요건이나 관리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 사고가 왜 애리조나주에서 일어났느냐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2015년 이후 애리조나 주정부가 규제 완화를 약속하며 자율주행차 기업들을 애리조나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지적했다. 애리조나 주지사는 자율주행차에 대한 ‘규제 프리’ 정책을 강하게 내세우며 기업을 찾아다녔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이번에 사고를 낸 우버만이 아니라 웨이모, 리프트, GM 등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많은 기업이 애리조나에서 수백대의 자율주행차량을 운행해왔다.

 

결국 실리콘밸리가 있는 캘리포니아주 대신에 애리조나주가 ‘자율주행차의 유토피아’로 등장했다. 애리조나에서 우버는 자율주행 시험 중 사람이 운전대를 넘겨받아야 했던 횟수 등을 당국에 보고할 의무가 없었다. 운전석에 사람이 앉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무인 자율주행 시험도 시작할 수 있었다. 애리조나주 전체가 우버를 위한 자유롭고 공개적인 테스트베드가 되었다.

 

애리조나주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으로 생긴 ‘규제 진공’ 상태에서 우버는 최대한 빨리 성과를 내려고 애를 썼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자율주행 시험 거리를 빠르게 늘리고 상용화를 위한 발판을 만들려는 과정에서 우버는 작년 말 자율주행 시험 차량에 타는 사람을 두 명에서 한 명으로 줄였다. 한 명이 컴퓨터 시스템을 관찰하고 다른 한 명이 비상시 운전대를 잡도록 나누었던 역할을 한 명이 담당하게 된 것이다. 이럴 경우 혼자서 장시간 집중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당연한 우려가 회사 내부에서 있었다. 자율주행 시험 중 우버의 안전 운전자가 졸거나 딴짓을 하다가 걸리는 일도 있었다.

 

애리조나주가 이번 사고를 일으킨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고가 자율주행차라는 ‘혁신’을 위해 안전 규제를 적극적으로 없애온 애리조나주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은 별로 놀랍지 않다. 자율주행차는 지금보다 더 안전해질 수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기업, 규제기관, 운전자, 보행자의 입장이 어떻게 조율되는지에 따라 자율주행 교통체계의 미래가 크게 달라진다. 이미 자율주행 혁신가들을 전적으로 칭송하고 지원하는 ‘기울어진 도로’에서는 보행자가 안심하고 길을 다닐 권리를 요구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교통 기술과 정책의 중심이 점점 보행자가 아닌 자율주행차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약속한 범정부적 차원의 노력을 자율주행차 상용화뿐만 아니라 보행자 안전에 투입하면 어떤 미래가 가능할까. 보행자 문제를 자율주행차 상용화 과정의 실수나 골칫거리로 여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율주행 기술을 보행자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범정부적 대책 중 하나로 삼으면 어떻게 될까. 보행자가 마음 놓고 걸어다닐 수 있는 교통 시스템은 무엇이며, 자율주행차는 그 안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를 고민한다면 더 놀라운 혁신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문 대통령이 2030년 자율주행차 상용화 약속을 꼭 지킬 필요는 없다. 정부와 업계가 함께 만들어 제시해야 하는 것은 안전의 약속이다. 규제가 없어야 혁신을 하고, 그러고 나면 자연스럽게 ‘교통사고 제로시대’가 되어 안전해질 수 있다는 말은 너무 달콤해서 믿기 어렵다. 구체적으로 어떤 지원과 규제를 마련해서 혁신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이룰지 토론해야 한다.

 

자율주행차 조수석에 앉은 문 대통령은 운전자에게 “조마조마 안 해요?”라고 물었다. 뒷좌석에는 자율주행차 개발팀장인 현대자동차 이진우 상무가 앉아 있었다. 그 차에 탄 사람들 모두에게 자율주행은 매력적인 동시에 어렵고 두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대통령을 옆에 태우고 긴장한 운전자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미래 오디세이]2030년, 자율주행차가 달려도 괜찮을까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3282036015&code=990100#csidx1c32ca75a230079b8082dfefc427f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