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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준] 여성 안심귀가 스마트 치안이 놓치고 있는 것들(한겨레, 2018.1.22)
Writer 관리자 Created 2018.01.22 Views 1054

 

여성 안심귀가 스마트 치안이 놓치고 있는 것들

 

등록 :2018-01-22, 한겨레

 

 

 

 

 

 

[8인의 여덟 갈래 정책산책]
여성의 걷기 경험과 안심귀가 앱
 
최근 여성 안전에 대한 관심과 논쟁이 뜨겁다. 근본적인 원인은 뚜렷하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크게 증가한 것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5년 성폭력 범죄는 3만1063건 발생하여 2006년의 1만4277건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1][2] 같은 기간 전체 범죄가 5.0%로 소폭 증가한 것을 고려해 보았을 때 이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증가치다.[3]

 

강남역 살인 사건으로 대표되는 몇몇 충격적인 범죄 또한 여성 안전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2016년 5월 17일 새벽 1시께 30대 남성 김아무개씨가 강남역 인근 노래방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을 살해한 이 사건은 여러 측면에서 여성 안전에 대한 관심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공식적으로 경찰청은 정신질환자의 “묻지 마” 범죄라고 결론지었지만, 범인이 여성이 들어올 때까지 6명의 남성을 그냥 보낸 점, 범죄의 동기로 직장에서 여성들이 자신을 싫어하고 음해한다고 진술한 점, 도시 한복판에서 사건이 일어난 점 등으로 인해 여성 안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2006-2015 성폭력 범죄 증가 추이.
2006-2015 성폭력 범죄 증가 추이.
 
 
 
여성 안전과 안심귀가 앱

 

이러한 상황에서 폐회로 텔레비전(CCTV)과 스마트폰 앱을 중심으로 한 ‘스마트 치안’ 체계가 여성 안전의 유력한 해결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CCTV는 지난 5년간 2배 이상 늘어났고, 음성, 영상 분석 소프트웨어를 도입하여 범죄를 자동으로 감지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또, 최근 몇 년간 여러 지자체가 앞다투어 ‘안심귀가 앱’을 도입하고 있다. 안심귀가 앱은 사용자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위험 상황이 발생하면 보호자와 경찰에 알려 사건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앱스토어에서만 22개의 지자체가 안심귀가 앱을 운영하고 있고, 이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스마트 치안 체계는 도시마다 설치된 도시통합관제센터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모니터링 요원과 경찰관이 상주하는 이 곳은 도시 내 CCTV 영상과 안심귀가 앱을 통해 범죄를 감지한다. 모니터링 요원이 CCTV 화면을 통해 직접 범죄 현장을 포착하거나, 안심귀가 앱에서 위험 상황 발생시 전송된 위치정보를 토대로 주변의 CCTV를 확인하여 범죄 현장을 확인하고, 상주하는 경찰관의 지휘 하에 경찰이 출동하여 위험 상황을 해결하는 식이다. 한정된 인력으로 빠르게 늘어나는 CCTV를 살펴보기 위해 최근에는 영상, 소리 정보를 분석하여 모니터링 요원이 미처 찾아내지 못한 긴급 상황을 감지하려는 시도 또한 늘어나고 있다.

 

앱 사용자를 추적하는 CCTV 통합관제센터. 출처: <포커스 부평>
앱 사용자를 추적하는 CCTV 통합관제센터. 출처: <포커스 부평>
안심귀가 앱 작동원리. 출처: 성동구청, https://www.sd.go.kr/sd/main.do?op=mainSub&mCode=13C120050000
안심귀가 앱 작동원리. 출처: 성동구청, https://www.sd.go.kr/sd/main.do?op=mainSub&mCode=13C120050000
 
 
이러한 스마트 치안 체계는 범죄에 대한 빠른 실시간 대응을 약속한다. 지금까지 CCTV를 설치한 이유는 대부분 범죄자 검거 등 사후 대응이었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연쇄살인범 검거에 CCTV가 수 차례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행정안전부는 CCTV 설치에 특별교부세를 배정하는 등 증가 추세에 박차를 가했다. 경기 서남부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인 강호순이 2009년 붙잡히면서 그 해에 이례적으로 CCTV 증가율이 50%를 웃돌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CCTV의 목적은 사후 대응뿐만 아니라 도시 내 범죄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것까지 넓어지고 있다. 피해자가 신고하기도 전에 범죄를 파악하고 상황이 종료되기 전에 현장에 도착하여 시민의 안전을 확보하고 범인을 체포하는 장면이 스마트 치안 체계가 최종적으로 그리는 그림이다.
 
이처럼 CCTV와 스마트폰을 통해 이용자의 위치와 위급 상황을 파악하고 신속하게 대응하려는 시도는 과연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불러올 수 있을까? 스마트 치안 시스템의 보호 대상으로 지목 받는 여성 시민들은 과연 앱 이름처럼 안심하고 귀가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공공안전에 대한 가정, 철학과 더불어 앱의 잠재적 사용자인 여성의 도시 공간 경험을 살펴보아야 한다. 기술 시스템의 성공은 실제를 잘 반영하는 가정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안전의 공간적 특성과 걷기의 본질

 

지금까지 많은 범죄 전문가들은 안전을 장소의 특성으로 생각했다. 장소가 안전하면 장소를 이용하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자연스레 안전해진다는 논리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여 우리나라의 많은 지자체에서도 채택한 “범죄예방 환경 디자인”은 이러한 사고를 잘 보여준다.

 

이 디자인 기법은 범죄를 일으키기 어려운 환경이 존재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남에게 잘 보이는 장소에서는 범죄가 잘 일어나지 않는데, 이를 위해 범죄예방 환경 디자인은 담장을 창살처럼 만들어 벽 너머에서도 안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어두운 곳을 없애기 위해 조명을 적당한 높이로 설치할 것을 권장한다. 범죄가 잘 보이는 환경에서는 범죄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사람들도 더 안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4]

 

안심귀가 앱과 CCTV 또한 이와 마찬가지다. CCTV는 안전하지 않은 장소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설치하고, 안심귀가 앱은 사용자가 어떤 장소에 있는지 알기 위해서 위치를 추적한다. 즉, 스마트 치안 시스템은 안전과 공포의 문제를 장소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는 말이다. CCTV 아래는 도시통합관제센터를 통해 경찰이 빠른 속도로 출동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이고, 이러한 사실을 아는 여성은 지도 위의 점이 매끄럽게 움직이듯 아무 문제 없이 지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2000년대 들어 등장한 사회과학 연구 패러다임인 모빌리티(mobility, 이동성)는 위와 같이 장소에서 특징을 찾는 사고방식을 비판한다. 장소가 아닌 움직이는 사람과 사물에 집중해서 그(것)들이 왜, 어디서, 어디로, 어떤 리듬으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 과정에서 사람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에 주목하자는 것이다.[5] 안심귀가 앱은 여성의 이동을 출발점에서 도착점까지 자동으로 생성된 경로를 따라 움직이는 지도 위의 점으로 보았지만, 모빌리티 패러다임은 이러한 ‘점’만으로 담아낼 수 없는 여성의 ‘걷기 경험’에 주목해야 함을 강조한다.
 
<불안한 나라의 앨리스>는 2016년 10월 방송된 다큐멘터리로, 여성들이 길거리와 거주지에서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불안과 공포를 인터뷰와 실제 현장 방문을 통해 보여준다. 한편, ‘#이게_여성의_자취방이다’ 해시태그 운동은 지난 2월 여성 트위터 사용자들 사이에서 구심점 없이 자발적으로 일어난 현상이다. 여성 자취방에 대한 환상(예컨대, 깨끗하고, 분홍색이며, 좋은 향기가 나고, 때로는 에로틱하다는 환상)에 반발하여 많은 트위터 사용자들은 평소 자신의 자취방과 주변 환경이 얼마나 위험한 공간인지 고발했다.

 

도시에서 걷기: 작전명 귀갓길

 

안타깝게도 다큐멘터리와 해시태그 운동에서 여성의 걷기 경험은 마치 작전을 수행하는 것 같았다. 이들은 일상적으로 주변 환경을 경계한다. 회사원 여지윤의 말이다.

 

“밤에 길을 갈 때는 땅을 되게 많이 봐요. 땅을 보면 사람들이 오는 그림자가 제 뒤에 있어도 보이거든요. 일단 기본적으로 그림자랑 신발 소리를 듣고 ‘아 남자일까?’를 파악한 다음에 대응을 하는 거죠.”

 

소리와 그림자에 대한 예민함과 공포는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과 트윗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뛰어오는 소리, 계단 아래에서 들려오는 문 여는 소리, 골목 모퉁이마다 확인하는 그림자에 대한 진술은 주변을 경계하는 가장 흔한 모습이다. 잠재적인 공격에 대비해서 주변을 경계해야 하지만, 여성들은 그마저도 자신의 모든 감각을 동원할 수 없었다. 작은 시비조차도 큰 위협으로 다가오는 이들에게는 쳐다보는 행위조차도 조심해야 할 몸가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변을 경계하다 보면, 집으로 향하는 경로를 바꾸는 일도 빈번히 일어난다. <불안한 나라의 앨리스>는 이란성 쌍둥이 남매의 퇴근길을 비교한다. 남성인 우용씨가 주변 환경에 관계없이 가장 빠른 길을 선택하는 반면, 여성인 나미씨는 “사람이 많은 쪽”을 선택한다. 유동인구에 따라서 얼마든지 길을 바꿀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경로 선택은 종종 철저히 전략적이다. 해시태그 운동에 참여한 한 트위터 사용자는 대중교통에서 내린 후 CCTV가 달린 건물 앞으로 지나가며 빤히 쳐다본다고 했다. 자신의 마지막 행선지를 알릴 단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로 변경은 변화하는 주변 환경에 맞추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좁은 골목길에 서 있는 취객, 오늘따라 꺼진 가로등, 아까부터 뒤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 심지어 설명할 수 없는 동네 분위기나 기분에 따라서도 길을 바꿀 수 있다.
 
주변에서 일어난 범죄도 영향을 준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5년 한 해에만 노상에서 3,443건의 성 관련 범죄가 발생했다.[6] 이러한 범죄는 대부분 인구가 밀집된 도시에서 일어나므로,[7] 근처에서 성폭력 범죄가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범죄가 일어난 동네나 길을 피해 다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우용씨와 나미씨의 경로 차이. 출처: SBS 스페셜, 불안한 나라의 앨리스
우용씨와 나미씨의 경로 차이. 출처: SBS 스페셜, 불안한 나라의 앨리스
 
 
여성은 걷는 동안 길을 바꾸는 일 외에도 수많은 전략을 생각하고 시뮬레이션을 하기도 한다. 지금 당장 누군가의 공격을 받았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 끊임없이 구상해야 한다. 손에 들고 있는 뜨거운 커피를 어떻게 무기로 활용할 것인지, 앞의 어두운 골목에서 누군가 나타나면 어디로 도망칠 것인지, 지금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은 어디인지 계속해서 고민하는 것이다.

 

많은 여성 보행자들에게 걷기는 끊임없는 전략의 계획이자 수행이다. 여성들은 주변 환경에 민감해야 하고, 잠재적인 위험에 대비해야 하며, 위험한 상황에서 어떤 움직임을 취할지 쉬지 않고 고민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주변 환경도 가만히 있지만, 걸으면 필연적으로 주변 환경도 변화하기 때문이다. 도시는 여성에게 전쟁터이고, 그들이 수행하는 것은 ‘귀갓길’이라는 작전이다.
 
“안심”할 수 없는 여성들

 

<불안한 나라의 앨리스>와 해시태그 운동에서 본 여성들의 경험을 보면, 안전과 공포가 장소의 특징이라는 명제에 의문이 든다. 안전한 장소와 불안한 장소가 따로 있으면 왜 여성들은 ‘항상’ 주변을 경계할까? 안전한 장소를 택하고 불안한 장소는 피하면 되는데 경로는 왜 바꾸며, 어떻게 도망가고 어떻게 대처할지는 왜 생각하는 걸까?

 

답은 명백하다. 안전한 공간과 불안한 공간은 따로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공포에 대한 여성들의 진술에서 반복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은 특정 장소를 지나간다는 ‘공간’보다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순간, 즉 ‘시간’에 대한 예민함이다. 같은 장소라도 조명이 꺼졌을 때 훨씬 불안하다. 같은 장소라도 수상한 사람이 앞에 있을 때가 훨씬 불안하다. 그림자가 쉬이 멀어지지 않을 때 불안하고, 발자국 소리가 쫓아오는 것 같을 때 불안하며, 주변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을 때 불안하다.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여성을 둘러싼 주변 환경은 걷기의 본질적인 특성상 끊임없이 변화할 수밖에 없고, 여성이 불안을 느끼는 때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불안의 여러 요소가 중첩될 때이다.

 

위치를 추적하고 CCTV로 지켜보는 것만으로 여성은 좀처럼 “안심”할 수 없다. 스마트 치안 시스템은 귀갓길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장소와 위치의 문제로 치환한다. 여성은 시스템에서 지도상의 점 하나로 인식된다. 통합관제센터의 모니터링 요원에게 문제란 이 점의 이동에 문제가 생기거나, 아니면 여성이 운 좋게 CCTV 화면에 찍히고 있을 때 발생하는 위험상황뿐이다. 경찰 출동에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이러한 경우 시스템은 잘 작동할 것 같다. 신고하기도 전에 사건을 파악한 경찰은 범행이 더 심각한 피해를 입히기 전에 빠르게 출동하여 범인을 검거하고 상황을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다큐멘터리와 해시태그 운동에서 본 여성은 장소와 관계없이 주변을 면밀히 살피고, 경로를 수정하고, 긴급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불안과 긴장감 속에서 고민한다는 점이다. CCTV를 통해 경찰이 빨리 출동할 수 있는 장소를 더 많이 만들고는 있지만, 불안, 긴장, 안심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아 보인다.
 
 
 
 
[주]

 

* 이 글은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수업인 ‘Mobility, Power, and Policy’에서 많은 영감을 받아 작성하였다.

 

[1] 2005년에는 11,551건의 성폭력 범죄가 발생하여 통계 범위를 한 해만 늘려도 증가율은 169%로 급격히 상승한다.

 

[2] 성폭력 범죄에는 강간, 강제추행, 강간 등 살인/치사, 강간 등 상해/치상, 특수강도 강간, 카메라 등 이용 촬영, 성적 목적의 장소 침입, 통신매체 이용 음란, 공중 밀집 장소 추행이 포함된다.

 

[3] 대검찰청 (2016), 『2016 범죄분석』, 대검찰청.

 

[4] Crowe, T. D. & Lawrence J. F. (2013),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Vol. 2. Wlatham, MA: Butterworth-Heinemann.

 

[5] Cresswell, Tim (2010), “Towards a Politics of Mobility”, Environment and Planning D: Society and Space, Vol.28, no.1, pp.17-31.

 

[6] 노상은 단일 장소로는 성폭력 범죄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장소이다. 경찰청 (2016), 「경찰청범죄통계」.

 

[7] 성폭력 범죄의 95%가 도시에서 일어난다. 경찰청 (2015), 「경찰청범죄통계」.
 
 
 
윤기준/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ykj90@kaist.ac.kr
 
 
원문: http://www.hani.co.kr/arti/PRINT/82881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