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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치형] '대학의 군사기술 연구' 국내도 사회적 논의 무대 올랐다 (한겨레, 2018.4.15)
Writer 관리자 Created 2018.04.15 Views 1058

 

 

‘대학의 군사기술 연구’ 국내도 사회적 논의 무대 올랐다

 MIT, 군사기술 연구로 본격 성장
반전운동 거치며 학내 논의 틀 형성
“대학의 국방연구 금지는 불가능”
대학 밖 관점 고려한 연구윤리 필요

 

5년 전인 2013년 4월22일 영국 런던에서 국제적인 비영리조직 ‘킬러로봇 금지 캠페인’이 출범해, 인공지능 킬러로봇 개발 반대활동을 해오고 있다.    킬러로봇 금지 캠페인 제공
5년 전인 2013년 4월22일 영국 런던에서 국제적인 비영리조직 ‘킬러로봇 금지 캠페인’이 출범해, 인공지능 킬러로봇 개발 반대활동을 해오고 있다. 킬러로봇 금지 캠페인 제공

 

 
#1. 지난 4일 토비 월시, 제프리 힌턴, 요슈아 벤지오 등 세계 인공지능 연구를 이끌고 있는 대표적 학자 57명(29개국)이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과의 공동연구를 거부하겠다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카이스트가 한화와 공동으로 인공지능 무기를 개발한다고 발표한 것에 대한 인공지능 연구자들의 집단적 반대다. 지난 2월 카이스트는 방산업체인 한화시스템과 함께 국방인공지능융합연구센터를 설립했고, 인공지능 기반 지휘결심 지원체계, 무인잠수정 항법 알고리즘 등의 연구를 할 예정이다.

 

#2. 지난 4일 <뉴욕 타임스>는 구글 직원 3100명이 순다르 피차이 최고경영자에게 편지를 보내 “미 국방부의 메이븐 프로그램에서 철수하고 전쟁기술을 구축하지 않을 것임을 발표하라”고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메이븐은 인공지능을 이용해 군사용 드론의 이미지를 분석하고 드론의 목표 타격률을 향상하는 미 국방부 프로젝트다. 미 국방부와 구글은 구글 제품이 치명적 자율무기시스템 개발에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구글 일부 직원들은 메이븐 프로젝트에 구글이 참여하는 것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3. 2014년 6월 일본 아베 신조 내각이 방위산업 육성을 위해 대학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펼치겠다고 발표했다. 아베 내각은 북한 핵과 중국 견제를 명분으로 2017년 사상 최대의 방위예산 확보에 나섰고, 특히 대학에 지원하는 군사기술 기초연구비는 110억엔(1092억원)으로 전년도보다 18배 늘렸다. 방위성은 2016년 문부과학성을 통해 국립 도쿄대의 ‘군사연구 금지’ 정책을 변경할 것을 촉구했다. 도쿄대는 1959년 대학 최고의결기구인 평의회에서 “군사연구 전면 금지”를 결정한 이후 이를 지키고 있다. 교토대, 니가타대 등도 학내 윤리지침에 “군사연구 자금지원 거부”를 명기하고 있다. 방위성 정책에 맞서 2016년 7월31일 일본 각 대학의 교수와 연구자 58명은 ‘군사연구 반대’ 1만명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4. 2017년 6월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은 인수했던 로봇부문 자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와 샤프트 2개사를 소프트뱅크에 다시 매각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빅도그’ ‘스팟’ ‘아틀라스’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2족, 4족 보행 로봇 기술력을 입증했고, 샤프트는 2013년 미 국방부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주최 재난로봇대회 예선에서 1위를 차지하며 기술력을 선보인 업체다. 구글이 최고의 로봇회사들을 매각한 이유로 상용화 지연, 인력 이탈 등이 거론됐지만 배경엔 이들 로봇기업이 군사목적과 절연하기 어렵다는 현실도 있다. 구글은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서 국방부 자금지원을 거부하거나 다르파 대회 참가를 꺼렸지만, 재난로봇대회 참가팀 다수는 미 국방부 지원을 받은 아틀라스를 본체로 사용했다. 구글은 세계를 상대로 상업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군사연구에 발 담근 이미지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공지능 분야 석학들의 공동연구 거부 선언에 놀라 카이스트와 외교부가 부랴부랴 해명에 나서 ‘킬러로봇 개발’이라는 오해가 풀리고 보이콧 선언은 철회됐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킬러로봇 개발과 연구자금 윤리를 둘러싼 과학자 집단의 논쟁은 진행형이다. 인명살상무기로 활용될 수 있는 기술 개발이나 그를 위한 정부 연구자금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는 오래된 질문이다. 공격무기가 아닌 방어용 장비라고 해서 논란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공격과 방어는 전투 승리라는 동일한 목적을 위한 도구이다. 접경지역 보초병을 대신할 수 있는 무인경비로봇은 방어용이면서 침입자에게 자동으로 총을 쏘게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

 

과학기술자는 연구개발 자금을, 국가는 군사용으로 활용할 첨단기술을 필요로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철갑마차 구상이나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망원경도 자금지원을 위해 군사적 용도를 앞세웠다. 1차 세계대전은 탱크, 기관총, 독가스를 사용해 막대한 인명피해를 냈고, 전쟁을 위한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2차 세계대전 원자폭탄 투하는 과학기술계의 집단적 자성 계기가 됐다.


시장성 없는 첨단과학기술 연구에 거액을 지원하는 군사기술 연구는 대학과 과학자들에게 거대한 유혹이다. 매사추세츠공대(MIT)는 2차대전과 냉전 시기 미 국방부의 군사기술 연구를 대거 수행하면서 세계적 연구중심대학으로 성장했다. 매사추세츠 렉싱턴의 공군기지 안에 있는 링컨연구소는 엠아이티 최대 연구소로, 1년 예산 10억달러를 집행하는 군사기술 연구소다.

 

최형섭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과학기술사)는 “과학자들에게 국방 관련 연구를 하지 말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대학의 연구가 외부에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고려해 연구 형식과 내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엠아이티 ‘전투병용 나노테크 연구소’는 군사기술 연구가 전투병 보호 기술 연구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대학 구성원 간의 합의가 이뤄진 사례라고 말했다.

 

전치형 카이스트 교수(과학기술정책학)는 “연구자들은 국제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연구에 집중하고 있지만 과학계 바깥이나 국제사회에서의 관점에서 볼 때 해당 연구가 불러올 파장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이번 카이스트 사례는 알려준다”고 말했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it/840655.html#csidxf6e2fd4c8c69747939035c2f1d75ec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