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전치형, 과학의 언저리] 동수 아빠의 과학(한겨레, 2018.04.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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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관리자 | Created 2018.04.26 | Views 810 |
동수 아빠는 모든 세월호들을 보았다. 도면으로도 보고 실물로도 보았다. 동수 아빠는 이제 세월호의 침몰에 대한 설명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에게는 설명을 들을 권리가 있고, 선체조사위원회와 정부는 설명을 내놓을 의무가 있다. 이것은 또한 한국 과학의 책무이기도 하다.
동수 아빠를 두 번째로 만난 것은 인양된 세월호가 거치된 목포신항에서였다. 작년 여름 미국 드렉설 대학의 스콧 게이브리얼 놀스 교수와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를 방문한 다음 배를 살펴보러 간 길이었다. 인양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인양분과장이었던 동수 아빠는 몇 달째 세월호를 지키고 있었다. 그동안 그는 배에서 화물과 뻘이 나오는 것을 보았고, 구겨진 자동차들이 나오는 것을 보았고, 아이들의 핸드폰과 가방이 나오는 것을 보았고, 유해가 수습되는 것을 보았다. 놀스 교수와 나는 이 거대하고 처참한 배에서 사고의 원인을 찾아낸다는 것이 과연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동수 아빠는 그 끝을 짐작하기도 어려운 문제를 붙들고 있었다.
모형시험이 없는 토요일 저녁 우리는 연구소 근처 펍에서 맥주를 한잔 마셨다. 인양된 세월호를 일 년 가까이 지켜온 그는 지쳐 있었다. 배는 올라왔지만 진실은 아직 올라오지 않은 상황을 그는 그저 버티고 있었다. 자식을 앗아간 배를 일 년 동안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사람의 몸과 마음에 어떤 일이 생기는지는 아직 어떤 과학자도 연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동수 아빠 말고는 그런 데이터가 없다.
동수 아빠는 모든 세월호들을 보았다. 도면으로도 보고 실물로도 보았다. 동거차도에서도 보고 목포에서도 보았다. 배 안에 들어가서도 보았고 배 밖에서도 보았다. 아이들 핸드폰에 저장된 영상으로도 보았고, 화물칸 차량 블랙박스가 찍은 영상으로도 보았다. 마린 연구소 9929번 모형으로도 보았고, 9930번 모형으로도 보았다. 세월호 조타실을 재현한 시뮬레이터 안에 들어가 그날 아침 배에서 보였을 병풍도와 동거차도도 보았다. 세월호라면 누구보다 많이 보고 오래 보면서 그는 세월호 전문가가 되었다.
동수 아빠는 이제 세월호의 침몰에 대한 설명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에게는 설명을 들을 권리가 있고, 선체조사위원회와 정부는 설명을 내놓을 의무가 있다. 이것은 또한 한국 과학의 책무이기도 하다. 한 해에 에스시아이(SCI) 논문을 오만 편 넘게 발표하는 나라에서 배 한 척이 왜 가라앉았는지를 설명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다. 이는 과학과 국가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는 일이다. 무너질 대로 무너진 가슴에 손을 얹고 국가에 예를 표하던 동수 아빠에게 우리는 정중하게 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