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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치형, 한겨레 특별기고] 세월호 특조위는 무슨 기구이며, 뭘 조사해야 하는가(2018.4.16)
  •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4.16 12:42
    조회수
    202

 

[특별기고] 세월호 특조위는 무슨 기구이며, 뭘 조사해야 하는가

 

 

 

스콧 게이브리얼 놀스(왼쪽) 드렉설대 역사학과 교수와 전치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스콧 게이브리얼 놀스(왼쪽) 드렉설대 역사학과 교수와 전치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스콧 게이브리얼 놀스 교수는 ‘재난의 역사’ 전문가이다. 2017년 여름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 방문교수로 있으면서 전치형 교수와 함께 세월호 문제를 연구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6월 ‘재난 조사’에 대한 국제 학술 워크숍을 개최했고, 세월호 특조위 위원과 조사관들을 인터뷰하는 등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전 교수는 현재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자문위원이다.

 

지난 3월29일 세월호 가족들은 2기 특조위, 즉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앞에 모였다. 단원고 지상준군 어머니 강지은씨가 자유한국당 추천을 받은 황전원 위원을 막아섰다. 그리고 외치듯이 물었다. “무슨 기구예요, 특조위가!” “무슨 기구인지 알고 들어오시는 거예요, 지금!” “무슨 마음으로 여기에 계시는 거예요, 지금!” 가족들은 두번째로 만들어낸 특조위가 또 망가지는 것을 막고자 했다. 4월11일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황 위원의 사퇴를 촉구하며 삭발했다.

 

 

김영훈 화백
김영훈 화백

 

 

 

 

지난 2년간 세월호 참사 조사의 지형은 별로 변하지 않은 것인가? 2016년 여름 정부의 세월호 특조위 방해에 항의하며 이석태 위원장이 단식농성을 했던 것은 재난 조사의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장면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비참한 사건 중 하나의 진상을 규명하고 교훈을 얻으려는 시도는 정치적 수렁으로 빠져버렸다. 재난 조사가 또 하나의 재난이었다.

 

“무슨 기구예요, 특조위가!”라는 물음은 첫번째 특조위에도 꼭 필요한 것이었다. 지난해 여름 1기 특조위의 몇몇 위원들과 조사관들을 인터뷰하면서 우리는 특조위의 운명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이해하고자 했다. 17명의 위원들은 특조위의 근본적인 과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조차 합의할 수 없었다. 당시 여당의 추천을 받은 위원들은 특조위가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리려 한다고 의심했고, 특조위의 기본 과제는 검찰, 감사원, 해양안전심판원 등이 이미 내놓은 조사결과를 검토하고 오류가 있으면 수정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야당과 가족의 추천을 받은 위원들은 기존 조사를 전혀 믿을 수 없으니 특조위가 참사의 모든 진상을 새로 규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극심한 대립은 특조위의 구성 원리를 설계할 때 예정된 것이었다. 위원들은 바깥의 정치적 대결 구도를 특조위 회의실 안에서 극복할 수 없었다. 구체적인 조사 계획을 수립하고 작은 의견 차이를 조정하기에도 바쁠 위원회가 거대한 세계관의 차이를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유가족과 여야 정당, 대법원, 대한변호사협회가 몫을 나누어 위원을 추천하는 제도는 ‘황금 비율’을 만들어 의사결정을 돕는 대신 불신과 반목을 특조위 운영의 기본조건으로 만들었다.

 

 

 

1기 특조위, 정치적 대결구도 근본과제 무엇인지 합의 못해 개별 신청사건 해결방식 운영 참사 전모 못 밝히고 물음 남아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 앞으로 뭐가 바뀌어야 하는가 특조위는 이런 질문에 답해야 

 

2조 특조위, 활발히 대화하고 분쟁조정 제도·전문성 확보로 설득력 있는 보고서 발간해야 비극이 역사로 기억될 수 있다

 

 

 

합의를 통해 자체적인 조사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특조위는 조사 신청이 들어온 사건들을 배당하여 조사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는 2000년대 초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이 군사독재 시기 공권력에 의한 죽음의 진상을 밝히는 것과 유사한 접근이었다. 세월호는 이들 사건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개별 신청 사건을 해결하고 정리하는 방식은 세월호 참사의 전모를 밝히는 데에 적합하지 않았다. 특조위는 무슨 기구이며 무엇을 조사하는지에 대한 물음은 계속 남았다.

 

모든 여건이 좋은 경우에도 재난 조사는 항상 어렵다. 심지어 조사해야 할 재난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논쟁의 대상이 된다. 2001년 미국의 9·11은 어떤 사건이었는가? 비행기가 건물에 충돌하거나 추락한 사건, 즉 항공 시스템의 실패인가? 미국 정부의 테러방지 시스템의 실패인가? 세계무역센터의 불을 빨리 끄지 못해 건물이 무너지고 거기 갇힌 사람들이 희생된 사건, 즉 건축물 설계와 소방안전 시스템의 실패인가? 이 간단한 물음에 대해서도 모두가 동의하는 답은 아직 없다. 9·11 조사위원회는 이 중 마지막 사안을 다루지 않았고, 그 문제는 별도의 위원회를 꾸려 다루게 되었다. 사건의 성격을 정의하고 그에 따라 조사 대상과 방법을 결정하는 일 자체가 조사위원회의 주요 임무다.

 

‘사회적 참사’에 특별조사가 필요한 것은 앞서 사건을 조사한 기관들을 불신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수의 피해자가 복합적인 원인으로 오랜 고통을 겪는 ‘사회적 참사’는 통상적인 조사로 다 설명할 수 없다. 누가 법과 규정을 위반했는가, 누가 지시했는가, 누가 징계를 받고 감옥에 가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은 부당한 압력과 개입이 없다면 검찰이나 감사원이 대체로 잘할 수 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 한국 사회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사회적 참사 특조위가 제시해야 하는 것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이다.

 

사회적 참사 특조위는 재난 조사의 역사, 그리고 세월호 1기 특조위와 선체조사위원회의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우선 내부 대화는 활발할수록 좋다. 사건의 정의와 범위에 대해 모두가 의견을 내어 토론하고 합의하는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조사하는가’를 계속 물어야 한다. 특조위가 모든 것을 조사하고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다. 무엇을 조사하는지에 대한 초기 방향 설정이 명확하고 세밀하지 않으면, 조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조율하기 어렵고, 결국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다.

 

‘황금 비율’은 잘 작동하지 않는다. 1기 특조위는 입장이 크게 다른 주체들이 각각 위원을 추천하는 방식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념적 균형이 조사의 효율과 공정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위원회 구성방식을 바꿀 수 없다면, 분쟁이 터졌을 때 조정할 수 있는 제도적, 인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다양한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 사회적 참사는 과학, 공학, 사회과학, 법률, 의료, 언론 등 여러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결합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1기 세월호 특조위에 선박 및 항해 전문가가 참여하지 않은 것은 조사활동에 중요한 한계로 작용했다. 어떤 조사를 위해 어떤 전문가가 필요한지 파악하는 초기 단계가 특조위의 역량을 좌우한다.

 

설득력 있는 보고서를 내야 한다. 1기 특조위에 대한 조직적 방해는 결국 보고서 발간 실패라는 결과를 낳았다. ‘사회적 참사’의 보고서는 일반 시민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문서가 되어야 한다. 미국의 9·11 조사위원회 보고서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재난 보고서는 참사의 원인을 공식적으로 확정하고, 정부와 기업의 잘못을 지적하고, 참사가 오랜 시간에 걸쳐 피해자와 가족에게 미친 영향을 기록해야 한다. 보고서가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지만, 공적 기구로서 특조위가 내놓는 보고서는 하나의 중요한 매듭을 짓는 역할을 해야 한다.    

 

좋은 재난 보고서는 다음 행동을 위한 근거가 된다. 평가가 엇갈릴 수 있지만, 9·11 조사보고서는 냉전 이후 가장 큰 미국 연방정부 조직인 국토안보부의 신설로 이어졌다. 이와 별도로 발간된 세계무역센터 붕괴에 대한 기술적 조사보고서는 고층건물 설계 기준을 바꾸었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와 사회적 참사 특조위의 보고서도 생명과 안전을 향한 변화를 이끌 수 있다. 위원회의 역량과 정부의 의지가 함께 필요한 일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공적인 재난 조사를 통해 한국 사회에 벌어진 비극을 공식적인 역사로 만들어 기억할 수 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특조위가 공식적인 설명을 제시한다면,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제주 4·3희생자 추념식에서 한 일을 세월호에 대해 할 수 있게 된다. 문 대통령은 “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선언”하고, 또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했다. 세월호를 앞에 두고 우리는 아직 공식적인 선언과 약속을 하지 못했다.

 

재난은 쉽게 종결되지 않는다. 억울하게 가족을 잃은 이에게 ‘완전한 해결’이란 없다. 다만 철저하게 조사하고, 깊이 있게 반성하고, 진실되게 약속하는 과정이 피해자와 가족에게 다소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또 그 과정을 통해 우리 모두는 조금 더 안전해지고, 조금 더 성숙하고, 국가를 조금 더 신뢰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재난을 겪고서야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재난을 겪고서도 배우지 못하는 것은 더 슬픈 일이다.

 

 

스콧 게이브리얼 놀스, 드렉설대 역사학과 교수

 

전치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원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408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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