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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치형, 과학의 언저리] 스티븐 호킹과 ‘4차 인간’(한겨레, 2018.3.22)
  •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3.22 19:54
    조회수
    162

 

[전치형, 과학의 언저리] 스티븐 호킹과 ‘4차 인간’

 

 

물리학자 호킹은 그 자신의 천재적인 뇌 안에 머물러 있던 것이 아니라,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의 지원을 받고 그 속에서 존재했다. 호킹의 뇌를 복제하고 남기는 것이 위대한 물리학자 호킹을 영원히 보존해주지 못하는 이유다.

 

 

전치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우리는 영원할 수 있을까.” “인간은 기계인가.” “어떻게 기계와 공존할 것인가.” <교육방송>(EBS)이 3월 초에 사흘 연속으로 방영한 다큐멘터리 ‘4차 인간’은 매회 질문을 하나씩 던졌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의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 교수가 해설을 맡아 인공지능, 뇌과학, 로봇 연구의 현장을 소개하면서 인간의 의미를 고민했다. 그의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해서 ‘데니스 홍 봇’을 만들어 가족, 친구와 대화를 시도하는가 하면, 인공지능 스피커를 장시간 사용한 사람이 거기에 감정을 느끼게 되는지를 실험하기도 했다.

 

 

2년 전 알파고와 이세돌 대국 이후로 모든 매체가 계속 비슷한 질문들을 하고 있다. 데이터가 곧 나인가, 뇌가 곧 나인가, 인간은 인공지능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는 로봇과 같이 살 수 있는가. 이에 대해 누구도 만족스러운 답을 제시할 수 없었다. 딱히 답을 기대하고 묻는 질문은 아니기 때문이다. 답이 어려운 더 중요한 이유는 이 질문들에 들어간 ‘나’, ‘우리’, ‘인간’이 모두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관념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을 대표한다고 믿으면서 하는 질문에는 답이 나올 수가 없다.

 

지난주 세상을 떠난 스티븐 호킹 박사가 ‘4차 인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삶과 죽음은 다큐멘터리에서 던진 질문들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호킹의 이름을 대입하면 모든 질문이 조금씩 어색해지기 때문이다.

 

스티븐 호킹은 영원할 수 있을까. 정보와 뇌를 통해 영원히 남을 법한 인간을 꼽자면 호킹은 일순위에 오를 것이다. 호킹 자신도 뇌의 정보를 컴퓨터로 옮겨 신체의 죽음 이후에도 존재를 유지한다는 생각을 언급한 적이 있다. 대중문화 속 호킹은 ‘통 속의 뇌’의 형상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몸의 근육이 거의 힘을 쓰지 못하므로, 심오한 물리학 이론을 만들어내는 그의 뇌가 곧 호킹 자신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호킹을 따라다니며 관찰한 인류학자 엘렌 미알레가 지적했듯이, 호킹이 위대한 물리학자 호킹으로 ‘활동’하는 것은 그의 뇌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간호사, 비서, 엔지니어, 지도학생, 동료 연구자, 가족 등 여러 사람들이 참여해서 수십년 동안 호킹이 물리학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했다.

 

미알레의 연구는 이들이 그저 호킹이 지시한 일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 호킹의 과학적 아이디어가 생겨나고, 발전하고, 확산되는 과정에 함께 참여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리학자 호킹은 그 자신의 천재적인 뇌 안에 머물러 있던 것이 아니라,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의 지원을 받고 그 속에서 존재했다. 호킹의 뇌를 복제하고 남기는 것이 위대한 물리학자 호킹을 영원히 보존해주지 못하는 이유다.

 

스티븐 호킹은 기계인가. 스티븐 호킹은 어떻게 기계와 공존할 것인가. 그의 뇌가 놀랍도록 성능이 좋은 컴퓨터였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삶은 놀랍도록 다양한 기계와 연결되어 있기도 했다. 호킹이라는 사람은 기계가 아니었지만, 기계는 호킹의 삶의 조건이었다. 호킹은 기계 덕분에 움직이고, 기계를 통해 말을 하고 연구를 했다. 살아 있기 위해, 물리학을 하기 위해 그는 기계와 ‘공존’해야만 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호킹을 기계와 편안하고 효과적으로 연결하는 데에 기여했다.

 

미알레는 호킹의 삶에서 최고의 천재만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조건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을 본다. 호킹은 뉴턴이나 아인슈타인과 비슷한 만큼 평창 패럴림픽에 참가했던 선수들과도 비슷하다. 호킹이 최고의 과학자가 되도록 도운 사람, 기술, 제도의 네트워크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호킹이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HS)의 공개적이고 적극적인 옹호자였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과학자로, 인간으로 길이 남을 호킹을 통해 우리는 ‘4차 인간’의 질문을 다시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영원할 수도 있지만 뇌와 정보로서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지만 기계 없이는 살 수가 없다. 우리는 이미 기계와 공존하고 있지만, 그 공존의 방식은 세심하게 결정하고 실천해야 한다. 호킹은 미래를 살아갈 ‘4차 인간’의 유효한 사례라고 할 수 없다. 대신 그는 이 시대를 살았던 ‘그냥 인간’의 강력하고 영원한 증거가 되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37301.html#csidxee2489264647d82b84b53514f8d35c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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