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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치형, 과학의 언저리] 물리학자 친구 없어요?(한겨례, 2018.08.09)
  •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9.03 17:12
    조회수
    103

[한겨레] 준형이 아빠는 아직 미치도록 궁금한 것이 많다. 한개의 ‘설’과 한개의 ‘안’을 가족들과 같이 읽고 해설해줄 과학자, 각각의 논리와 증거와 계산을 검증해줄 과학자, 특히 무엇이든 믿고 물어볼 수 있는 과학자가 더 많이 필요하다. 선조위는 ‘믿고 묻는 과학자’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전치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지난 8월6일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가 활동을 마쳤다. 언론은 선조위가 ‘두개의 결론’을 냈다고 평가했다. 1년에 에스시아이(SCI)급 논문을 5만편 넘게 내는 나라에서, 과학 분야 노벨상 하나쯤 받아야 한다고 해마다 다그치는 나라에서,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한다는 나라에서, 배 한척이 왜 넘어지고 가라앉았는지에 대해 공식적으로 합의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나를 포함한 네명의 외부집필진은 선조위의 종합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맡았었다. 조사관들이 작성한 보고서, 선조위에서 다른 기관에 의뢰한 조사 및 실험 보고서 등을 종합해서 세월호의 침몰 원인을 정리하는 글을 쓰는 일이었다. 외부집필진이 7월30일에 제출하고, 31일에 전원위원회에서 발표한 종합보고서 초안에 대해 위원들의 의견이 둘로 나뉘었다. 보는 관점에 따라 크다고 할 수도 있고 작다고 할 수 있는 양측의 의견 차이는 좁혀지지 못했다. 결국, 양측 위원들은 외부집필진이 쓴 초안을 가지고 가서 각자의 입장이 더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첨가, 수정, 삭제해서 최종본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8월3일, 양측 위원들은 각각 종합보고서 ‘에이(A)안’과 ‘비(B)안’을 들고 와서 다시 만났다. 양측을 공평하게 대하기 위해 ‘비안’을 ‘가안’이라고 불러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그래서 ‘에이안’과 ‘가안’ 두가지를 놓고 논의하던 위원들은 종합보고서 표지에 넣을 만한 각 안에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잠시 정회 후 돌아온 양측은 ‘에이안’은 ‘내인설’이라는 명칭을 쓰고, ‘가안’은 그냥 ‘가안’이라는 명칭을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선조위 보고서는 하나의 ‘설’과 하나의 ‘안’을 담게 되었다. 두 입장이 공평하게 전달되도록, 책의 한쪽을 펼치면 ‘내인설’이 나오고, 책을 뒤집어서 반대쪽을 펼치면 ‘가안’이 나오는 실험적인 형태의 종합보고서를 내기로 정했다.

선조위가 하나의 ‘설’과 하나의 ‘안’을 내놓은 상태에서 회의를 계속하는 동안 회의실 밖 복도에서 마주친 416 가족협의회 장훈 진상규명분과장은 내 팔을 잡으면서 말했다. “앞으로도 같이하실 거죠?” “글쎄요, 이제 저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까요?” “물리학자 친구 있을 거 아니에요.” “네? 아, 물리학자 친구요….” 세월호를 설명해줄 수 있는 물리학자 친구를 소개하고 그 물리학자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옮겨달라는 요청이었다.

장훈 분과장은 회의실 근처 작은 세월호 모형이 있는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는 이미 수백번은 해본 듯한 손놀림으로 모형 배를 이리 돌리고 저리 기울이면서 어떤 힘이 배를 이렇게 움직이도록 만드는지가 여전히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런 다음 그는 나를 칠판 앞으로 데리고 갔다. 섬을 몇 개 그리고 그사이로 4월 그날 조류가 흘렀던 방향을 표시하면서 이것이 배의 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아들 준형이를 삼킨 배의 모형을 들고서, 또 그 바다를 그리면서, 그는 물리학을 말했다. 준형이 아빠에게 이런 것들을 설명해드리라고 만들었던 선조위가 마지막 회의를 열고 한개의 ‘설’과 한개의 ‘안’을 의결한 날의 풍경이었다.

선조위는 활동을 마쳤지만 준형이 아빠는 아직 미치도록 궁금한 것이 많다. 준형이 아빠에게는 물리학자 친구가 필요하다. 1970년 평화시장에서 일하면서 근로기준법을 공부했던 전태일이 대학생 친구를 찾았듯이, 2018년 세월호 가족에게는 과학자 친구가 필요하다. 한개의 ‘설’과 한개의 ‘안’을 가족들과 같이 읽고 해설해줄 과학자, 각각의 논리와 증거와 계산을 검증해줄 과학자, 특히 무엇이든 믿고 물어볼 수 있는 과학자가 더 많이 필요하다. 선조위는 ‘믿고 묻는 과학자’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외부집필진은 종합보고서가 둘로 나뉘기 전 제출한 서론에 이렇게 썼다. “슬프게도 이 보고서를 들고 4년 전 그날로 돌아가 세월호의 침몰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보고서가 다시는 세월호와 같은 배가 출항하지 못하도록 하는 근거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는 세월호처럼 넘어지고 세월호처럼 가라앉는 배가 없도록 하는 일에 밑거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과학자들이 선조위 보고서를 돌려 읽고 국민에게 설명해줄 때만 가능한 일이다.

기사원문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5696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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