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영역
대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Media

Home NOTICES & EVENTS Media

[동아광장/김소영]무거운 문제, 어지러운 문제(동아일보 8.17)
  •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9.03 17:07
    조회수
    106

[동아일보]
무거운 문제였던 신고리 공론화… 질문 분명했기에 답을 찾아낸 것
대입 개편은 문제부터 어지러워… 熟議 거쳐도 답을 찾기 어렵다
‘공론화 만능’ 위험성 일깨운 셈

 

김소영 객원논설위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

 

 

질문을 받았을 때 대답을 못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질문을 못 알아들었거나 알아들어도 답을 모를 때다.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답을 구할 수도, 구할 필요도 없다. 질문을 이해한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답을 구할 수 있다. 후자는 문제가 무겁지만 어떻게든 언젠가는 해결을 기대해볼 수 있다. 전자는 문제가 어지러워 해결은커녕 문제를 그리는 것부터 해야 한다.

반년의 시간을 두고 진행된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공사 재개와 대입제도 개편안 공론화는 똑같이 공론화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무척 다른 조사였다. 신고리 공론화는 무겁지만 어떻든 결론이 났고, 대입제도 공론화는 어지러운 문제가 정말 어지럽다는 걸 확인했다.

일반 여론조사와 공론조사의 가장 큰 차이점은 대표성과 숙의성이다. 여론조사 역시 대표성이 높을수록 조사 결과에 대한 신뢰가 높다는 점에서 대표성이 중요하나 목적과 상황에 따라 대표성을 확보하지 않아도 실시한다. 공론조사에서 대표성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여론조사 결과는 정책에 참고할 수는 있지만 반드시 정책 결정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반면 공론조사는 대체로 장기적인 정책을 염두에 두고 실시하기 때문에 대표성의 결여는 정책 결정을 수용하는 데 심각한 장애가 된다.

두 공론화 보고서를 들여다보면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들인 점이 잘 드러난다. 시간과 돈을 들여 성별·연령별만이 아니라 찬반 의견 분포 등 균형 잡힌 표본을 마련했다.

문제는 숙의다. 숙의의 전제는 잘 모르는 걸 공부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으면서 생각을 다듬는 것이다. 시민참여단 수기를 보면 두 번의 공론화에서 이런 숙의를 경험한 참여자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개별적 경험을 떠나 두 공론화는 집단적 숙의 결과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가장 극명한 차이는 유보층의 변화다. 신고리 공론화에서는 1차 조사에서 ‘모르겠다’던 36%의 유보층이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서 3%로 대폭 줄었다. 집단학습을 통해 똑똑해진 것이다. 아쉽게도 대입제도 공론화에서는 시민참여단 선정 시 유보층이 26%였는데 조사 과정이 유보층 변화를 보기 어렵게 설계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숙의를 통해 모르는 걸 배웠는지 알 수가 없다.

또 다른 차이는 다양한 의견과 정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이 바뀐 경우인데 신고리 공론화에서는 시민참여단 중 7.5%가 공론화 과정에서 의견을 바꾸었다. 수치가 높진 않으나 찬반이 팽팽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변화다. 또다시 아쉽게도 대입제도 공론화 보고서에서는 애초에 각 의제를 지지한 사람들이 숙의를 통해 얼마나 의견을 바꿨는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 선발 과정의 객관성, 학교교육 정상화, 지역·계층 간 격차 완화 등 요인의 중요성이 시민참여단 결정에서 얼마나 고려됐는지 추이를 볼 수는 있었지만 3차에 걸친 조사에서 그 변화는 미미하다. 반대로 신고리 공론화에서는 안전성, 환경성 등 판단 결정 요인의 추이를 입장별로 볼 수 있었다. 찬반 입장 모두 지역 및 국가 산업적 영향의 중요성이 참여 초기에 비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집단적 숙의 결과의 차이를 단순히 조사설계의 차이로 돌릴 수는 없다. 무엇보다 신고리 공론화에서는 재개와 중단이라는 두 입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문제는 무겁지만 명확했고, 해야 할 일은 여러 근거와 정보, 가치관을 통해 입장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반면 대입제도 공론화는 네 가지 의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각각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네 가지 의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사 재개 찬반처럼 ‘예스-노’가 아니라 어느 안이든 어느 정도 지지할 수 있는 내용이다. 각 의제에 어지럽게 스며든 가치관과 입장을 교통정리하고 무엇을 ‘예스’ 하고 무엇을 ‘노’ 할지가 나왔어야 했다. 그래야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는 결론이 나올 수 있었다.

대입제도공론화위원회 결과 발표처럼 “공론화 과정이 생각을 정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 것”은 숙의의 전제이지 숙의의 결과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개편안 확정은 교육부로 되돌아갔다. 교육만이 아니라 복지 노동 국방 같은 거의 모든 영역에 중요하면서도 입장이 갈리는 정책 이슈가 존재한다. 그런 모든 이슈에 공론화가 필요할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질문이 나와야 답을 할 텐데 그 모든 이슈에 답할 수 있는 질문을 만드는 게 쉽지는 않다. 
 김소영 객원논설위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80817/91547986/1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