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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치형, 과학의 언저리] 일식과 혐오(한겨레, 2017.8.24)

 

[전치형, 과학의 언저리] 일식과 혐오

 

아인슈타인을 유명하게 만든 일식과 아인슈타인을 밀어냈던 인종주의는 샬러츠빌에서 다시 만났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너희는 우리를 대체하지 못해”, “유대인은 우리를 대체하지 못해” 같은 구호를 외쳤다. 이에 맞서 거리로 나온 이들은 “나치는 안 돼. 케이케이케이도 안 돼”라고 응수했다.

 

8월22일 화요일 <뉴욕 타임스> 온라인판의 아침 뉴스 브리핑이 뽑은 주제어는 “아프가니스탄, 일식, 샬러츠빌”이었다. 월요일 낮에는 미국 각지에 사람들이 모여 달이 해를 완전히 가리는 개기일식을 보며 경탄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백악관 발코니에서 일식을 보았다. 저녁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의 입장을 바꾸어 16년 가까이 전쟁이 계속된 아프가니스탄에 병력을 추가로 파견하겠다고 발표했다. 밤까지 열린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시의회 회의는 11일과 12일에 있었던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폭력시위 문제로 몹시 혼란스러웠다. 일식과 전쟁과 인종주의가 하루치 주요 뉴스에 함께 있었다.

 

1919년 개기일식에도 일식과 전쟁과 인종주의는 얽혀 있었다. 아서 에딩턴이 이끄는 영국 탐험대가 서아프리카와 브라질로 가서 개기일식을 관측하여 그보다 몇 년 전 발표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검증했다. 이 일식으로 아인슈타인은 과학계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이번 일식을 앞두고 나온 <워싱턴 포스트> 기사에서 과학사학자 히메나 카날레스는 당시 유럽인들이 눈앞의 비참한 현실이 아닌 새로운 소식에 목말라 있었다고 말했다. 개기일식과 상대성이론은 1차 세계대전으로 황폐해진 유럽에 작은 위안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럽이 또다시 위기를 겪기 시작하던 1933년 아인슈타인은 독일 나치의 인종주의, 특히 유대인 과학자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그는 나치에 맞서고 세계 평화를 촉구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을 유명하게 만든 일식과 아인슈타인을 밀어냈던 인종주의는 샬러츠빌에서 다시 만났다. 샬러츠빌에 모인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너희는 우리를 대체하지 못해”, “유대인은 우리를 대체하지 못해” 같은 구호를 외쳤다. 이에 맞서 거리로 나온 이들은 “나치는 안 돼. 케이케이케이(KKK)도 안 돼”라고 응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종주의자들과 그 반대편을 모두 탓하는 발언을 해서 심한 비판을 받았다.


인종주의자들이 준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샬러츠빌에서도 어김없이 일식은 일어났다. 샬러츠빌에서 보이는 부분일식은 21일 오후 1시15분에 시작해서 2시41분에 태양 지름의 88%를 가리면서 절정을 이루었다가 4시1분에 끝났다. 지역도서관은 일식 관찰용 안경을 나눠주고 일식 관측 파티를 열었다. 샬러츠빌에 있는 버지니아대학에서 물리학과 천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도 관측 행사를 준비했다. 일식이 지역의 상처를 덜어주었는지는 의문이다.

 

1919년의 개기일식이 “아인슈타인의 일식”이었다면 안타깝게도 2017년의 개기일식은 트럼프의 이름과 함께 기억될 것이다. 이번주에 일식을 보러 미국에 간 한국 과학자와 시민들은 단지 한 자연현상이 일어나는 현장이 아니라 차별과 혐오의 언어가 분출하는 한 나라에 들어간 것이다. 그들은 대체로 환대를 받았겠지만, 입국자는 언제라도 샬러츠빌의 시위대가 “너희는 우리를 대체할 수 없어”라고 외칠 때의 ‘너희’에 들어갈 수 있다. 일식을 쫓아간 과학자가 거기서 혐오를 맞닥뜨리는 것은 과학과 정치 모두의 불행이다.

 

언제나 그랬듯 희망은 있다. 샬러츠빌 사태 일주일 후인 동시에 개기일식 이틀 전이었던 지난 토요일 보스턴에서는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시위자들이 인종주의자들을 압도했다. 다음주에 보스턴에서 열리는 ‘과학과 사회’ 주제의 학회에 참석하러 미국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 나는 다소 안도했다. 아인슈타인의 과학과 생애, 과학과 인종주의, 과학과 전쟁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모두 올 수 있는 학회다. 학회를 주관하는 사람들은 외국에서 오는 학자들을 위해 보스턴공항 국제선 터미널 앞에서 ‘환영 시위’를 벌일 거라고 한다. 과학자는 혐오를 피해서 움직일 뿐 아니라 혐오를 뚫고서 움직인다.

 

일식 다음날인 22일은 버지니아대학 가을학기 개강일이었다. 인종주의 시위와 일식을 겪은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왔다. 인종주의 시위 직후 100명에 가까운 이 대학 교수와 조교들이 모여 개강 후에 이 사태를 학생들과 어떻게 토론할 것인지 논의했다. 버지니아대학 학생들은 일식과 상대성이론을 배우고, 남북전쟁의 역사를 배우고, 인종주의에 대해서 배울 것이다. 과학 공부, 역사 공부, 정치 공부가 엮이면 혐오를 몰아내는 힘이 된다. 다음 일식 때까지 우리는 더 많이 알고 더 강해질 것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08190.html#csidx19610aaf6c79b708b35a3326e8ca174

 

 

한겨레, 2017.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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