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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치형, 과학의 언저리] 세월호학의 가능성(한겨레, 2017.06.29)

 

[전치형, 과학의 언저리] 세월호학의 가능성

 

 

 

세월호학은 재난을 깊이 이해함으로써 인간과 공동체를 다시 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문이다. 선박복원성의 물리학, 침수와 침몰의 시뮬레이션 과학, 책임전가의 정치학, 국가폭력의 역사학, 고통의 인류학, 추모의 사회학 등 이론과 방법은 달라도 그 안에 있던 인간을 잊지 않음으로써 세월호학을 함께 할 수 있다.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도 그렇다.” 지난 주말 ‘세월호 참사-관점, 분석, 행동’이라는 주제로 서울에서 열린 연구 워크숍에 참석한 국내외 학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세월호 침몰과 그 이후 3년 동안 벌어진 일들은 여러 나라, 여러 종류의 재난을 연구해온 학자들에게도 쉽지 않은 사례였다. 참가자들은 세월호의 침몰과 구조 실패만이 아니라 참사를 조사하기 위해 생겼다가 사라진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에 대해서도 길게 토론했다. 특조위 조사관과 학자들이 서로 묻고 답하면서 조금씩 배워나갔다.

 

워크숍 첫날 오후 참가자들은 경기도 안산교육지원청에 있는 단원고 기억교실을 방문했다. 단원고 희생자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는 영상을 본 다음 2학년 1반부터 10반까지 교실에 있는 책상과 거기 남겨진 기억의 메모를 보았다. 복도에 있는 전시물에서 재난 연구자들은 세월호가 광주민주화운동 등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장면과 이어져 있음을 관찰했다.

 

워크숍에 참여한 동료 학자는 우리에게 ‘세월호학’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전공을 구분하지 않고 세월호 문제를 정면으로, 깊이 있게, 공동으로 연구하는 작업을 하자는 것이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9·11 테러, 지진, 쓰나미, 원전의 동일본 재난, 보스턴 마라톤 테러, 독일 엘베강 홍수 등 워크숍에서 발표된 사례에 비해 우리는 세월호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했다. 다만 세월호가 몇 날 며칠 동안 다른 사례들과 엮어서 토론할 수 있을 만큼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재난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이해하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그 동료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그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에 대해 여전히 논리에 의거해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이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는 아마도 한국 땅에서 조사와 분석의 대상이 된 가장 큰 물체일 것이다. 이 거대한 배가 침몰했다가 다시 떠오르는 과정을 복원하고, 그 배에 탔던 사람들과 가족들의 고통을 기록하고, 배에 타지 않았지만 배와 사람의 운명에 영향을 끼친 이들의 말과 행동을 추적하는 일이 세월호학의 일차 과제이다.

 

세월호 특조위에서 일하거나 세월호를 연구해온 많은 사람은 자신이 이 일을 할 수 있는 전문가가 아니었고, 세월호를 다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조위 위원, 조사관, 학자 중 누구도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세월호를 전공하지 않았다. 다만 이들은 각자에게 있는 작은 전문성을 모두 모아 더하지 않으면 세월호라는 사건을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세월호학은 전문성보다는 “인간에 대한 예의”에서 출발한다. 지난 주말 워크숍에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다른 원인으로 발생하여 다른 결과를 낳은 여러 사례를 함께 토론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모두가 인간이 겪은 재난이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겪었기 때문에 재난이 된 사건들이었다. 참가한 연구자와 특조위 조사관 모두 이 점을 잊지 않으려 했다.

 

세월호학은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고 공동체를 무너뜨린 재난을 깊이 이해함으로써 인간과 공동체를 다시 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문이다. 선박복원성의 물리학, 침수와 침몰의 시뮬레이션 과학, 책임전가의 정치학, 국가폭력의 역사학, 고통의 인류학, 추모의 사회학 등 이론과 방법은 달라도 그 안에 있던 인간을 잊지 않음으로써 세월호학을 함께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시도해본 적이 없는 규모의 융합 학문이 될 것이다.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인 카이스트가 이번 워크숍을 후원하고, 과학칼럼 지면에 그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에도 그런 의미가 있다.

 

첫날 마지막 일정으로 재난 연구자들은 세월호 가족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 애써야 하는 시간이었다. 면담을 마칠 무렵 가족 한 분은 “세계 여러 곳에서 재난에 대해서 연구하시고 또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피해자 입장에서 재난에 대응하고 이를 극복하도록 돕는 연구와 실천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곧 대학에서 은퇴하는 외국 학자는 여러 질문 대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연구자가 한국어로, 영어로, 일본어로, 독일어로 하고 싶었던 한마디를 세월호 가족에게 건넸다. “Take care of yourself.”(잘 지내십시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00837.html#csidxff1bcf32c976267a41738b7aa1a5cf9

 

 

한겨레, 2017.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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